1. 서 론
2. 연구자료와 분석틀
2.1 연구자료
2.2 분석틀
3. 국제 물 재배분 논의와 해외 사례의 시사점
3.1 물 부족에 대한 농업 책임론의 재검토
3.2 전 세계 농촌·도시 물 재배분 동향
3.3 캘리포니아: 가뭄기 단기 물이전과 엄격한 무해 원칙
3.4 스페인 발렌시아: 부분적 성공 이면의 거버넌스 취약성
3.5 남아프리카공화국: 형평성 중심 물개혁의 이상과 현실적 한계
4. 일본 물관리 정책의 특징과 비교사례
4.1 도네강 유역 사례: 농업수리 현대화를 통한 물 재배분의 제도화
4.2 구마모토 사례: 농업의 다기능성과 자연기반해법의 연계
4.3 분석틀에 따른 국외·일본 사례의 종합 비교
5. 한국의 제도 조건과 갈등 구조
5.1 물관리기본법과 국가계획의 제도적 진전과 한계
5.2 농업용수의 비중과 수리권 구조의 불명확성
5.3 가뭄 대응체계와 물 재배분 실행 간의 연계 한계
5.4 생태·환경용수의 적응적 배분과 유역 조건 기반 운영
6. 종합고찰 및 제도적 함의: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 체계의 설계 방향
6.1 한국 물관리 체계의 핵심 제도 공백
6.2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의 기본 방향: 일방적 감축에서 상호편익형 조정으로
6.3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 제도의 구성
6.4 단계별 이행 방향
7. 결 론
1. 서 론
최근 한국의 물관리 정책은 공급 인프라 확충 중심에서 수요관리와 부문 간 물배분 조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강수 변동성 확대, 반복적 가뭄, 도시·산업용수 수요 증가, 하천 생태복원 요구가 맞물리면서 한정된 수자원을 용도별로 어떻게 조정하고 배분할 것인가가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하였다(MOE, 2019, 2023a). 생활용수는 생존과 보건을 위한 필수 공공재이고, 농업용수는 식량 생산과 농촌 유지의 기반이며, 환경용수는 하천 생태계와 지속가능한 물순환을 지탱한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물관리는 특정 용도를 일방적으로 우선하기보다 용도별 공익성과 위기 단계별 부담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
2018년 「물관리기본법」 제정과 물관리일원화는 유역 중심 통합물관리의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 갈수기나 극한 가뭄 상황에서 생활·공업·농업·환경용수 간 우선순위, 감량 기준, 비용분담, 피해보상 절차는 아직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특히 농업용수는 농어촌정비법과 농업생산기반시설 관리체계에 근거하여 별도로 운영되어 왔고, 관행수리권과 허가수리권이 혼재되어 있어 유역 단위 물배분 조정 과정에서 권리와 책임의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한계가 있다(Kim et al., 2021; Lee et al., 2007).
한국은 국가가뭄정보분석센터(National Drought Information-Analysis Center)와 국가가뭄정보포털(National Drought Information Portal)을 통해 가뭄 예·경보와 전망 정보를 제공하는 등 정보 생산과 모니터링 역량을 축적해 왔다(K-water, 2023).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실제 부문별 물배분 조정, 한시적 감량 기준, 비상공급 발동·종료 기준, 피해보상 및 비용분담 절차로 직접 연결되는 운영체계는 제한적이다. 2015년 보령댐 가뭄, 2022~2023년 영산강·섬진강 유역 가뭄, 2025년 강릉 오봉저수지 가뭄 대응은 비상공급과 기관 간 협의를 통해 위기를 관리한 사례이지만, 동시에 물배분 조정 원칙, 한시적 감량 기준, 피해보상 절차가 사전에 제도화되어 있지 않을 경우 가뭄이 공급체계의 경직성 및 이해관계자 간 조정 부족과 결합하여 물갈등과 사회적 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을 보여준다.
이러한 맥락에서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은 단순한 용수 이전이나 농업용수 감축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농업용수는 농업생산의 필수 자원인 동시에 지하수 함양, 하천 회귀수, 농촌 경관 유지, 생태 보전 등 유역 물순환과 관련된 공익적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을 일방적 감축이 아니라, 생활·공업용수 안정성, 환경유량, 지하수 함양, 가뭄 비상대응 등 유역 차원의 공익 목적과 연계하는 제도적 조정 과정으로 규정한다.
이에 본 연구는 해외 물 재배분 논의와 일본의 협력적 물관리 사례, 국내 통합물관리 제도와 가뭄 대응 사례를 비교·분석하여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체계의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분석은 배분 기준, 권리와 절차, 거버넌스, 보상과 비용분담, 환경 및 제3자 영향, 재난대응 연계성의 여섯 가지 기준에 따라 수행한다. 이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한국에서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이 유역 맞춤형 배분 기준, 한시적 수리권 조정 절차, 피해보상 및 비용분담 기준, 중소유역 협의체, 수요자 중심 수리안전도, 환경서비스 평가가 결합된 단계적·유연한 공공관리형 조정체계로 설계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2. 연구자료와 분석틀
2.1 연구자료
본 연구는 계량적 수문 모형이나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에 의존하기보다 문헌 고찰과 정책 비교분석에 기반한 해설적·정책 지향적 연구이다. 분석의 초점은 여섯 가지 조정 요소(배분 기준·권리와 절차·거버넌스·보상과 비용분담·환경 및 제3자 영향·재난 대응 연계성)를 중심으로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의 제도적 조건을 종합 검토하는 데 있다.
연구자료는 국제 물 재배분 논의, 국외 및 일본 사례, 국내 제도와 선행연구, 국내 가뭄 대응 사례로 구성하였다. 먼저 국제 물 재배분 논의와 관련하여 Molle and Berkoff(2009)는 도시 물 부족을 농업용수의 과다 이용으로 단순화하는 관점을 비판하고, 물 재배분이 유역 물순환, 농촌경제, 제도적 조건, 사회적 수용성과 결합된 복합적 조정 과정임을 제시하였다. Garrick et al.(2019)은 농촌·도시 간 물 재배분 사례를 비교하여, 물 재배분이 단순한 시장 거래나 수리권 이전이 아니라 행정적 조정, 집단적 협상, 보상체계, 지역사회 영향이 결합된 정책 과정임을 보여준다.
국외 사례로는 물이전 제도가 제도화된 미국 캘리포니아, 물 교환 기반 재배분이 이루어진 스페인 발렌시아(Marina Baixa), 형평성 중심의 수리권 개혁을 추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선정하였다. 세 사례는 각각 공공관리형 물이전, 보상 결합형 물 교환, 권리 재구성이라는 서로 다른 재배분 방식을 대표하며, 여섯 가지 분석틀의 각 차원에서 상이한 강점과 한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적합하다. 일본 사례로는 농업수리시설 현대화를 통한 물 재배분(도네강 유역)과 환경서비스 지불을 통한 지하수 함양 협력(구마모토)을 검토하였다. 일본은 몬순기후에 따른 계절적 강수 편중, 논 중심의 관개농업, 공공 주도의 농업수리시설 관리체계 등 한국과 제도적·수문학적 조건이 유사하여 한국형 제도 설계에 대한 비교 가능성이 높다. 각 사례의 구체적 내용과 평가는 3장과 4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한다.
국내 가뭄 대응 사례로는 「물관리기본법」,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 농업용수 및 수리권 관련 선행연구, 국가가뭄정보분석센터와 관계기관의 가뭄 대응 자료를 검토하였다. 2015년 보령댐 가뭄(비상공급 중심 대응), 2022~2023년 영산강·섬진강 유역 가뭄(용도 간 물배분 조정), 2025년 강릉 오봉저수지 가뭄(농업용저수지와 생활용수 공급의 연계)을 검토하였다. 세 사례는 각각 대응 방식의 성격이 달라, 한국의 가뭄 대응체계가 물배분 조정 단계에서 직면하는 제도적 조건을 상호 보완적으로 보여준다.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주요 용어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물 재배분’은 기존 용도나 지역에 배분되어 있던 물을 다른 용도 또는 지역과 조정하는 포괄적 정책 과정을 의미한다. ‘물배분’은 평상시, 갈수기, 극한 가뭄 등 상황별로 생활·공업·농업·환경용수 간 우선순위와 감량 기준을 설정하는 행위로 사용하였다. ‘물이전’은 특정 기간 물량을 한시적으로 다른 용도나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경우를 의미하며, ‘물 교환’은 기존 수원과 재이용수 등 서로 다른 수원을 상호 대체하거나 교환하는 방식으로 한정하여 사용하였다.
2.2 분석틀
본 연구는 국내외 사례를 비교하기 위해 여섯 가지 분석틀을 설정하였다. 첫째, 배분 기준은 평상시, 갈수기, 극한 가뭄 상황에서 생활·공업·농업·환경용수 간 우선순위와 감량 기준이 어떠한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지를 검토하는 항목이다. 둘째, 권리와 절차는 물이용권 또는 수리권의 법적 성격, 감량이나 재배분이 필요한 경우 적용되는 행정적·법적 절차를 분석하는 기준이다. 셋째, 거버넌스는 국가, 유역, 지역 단위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대표성이 어떻게 확보되는지를 비교하는 항목이다. 특히 농업인, 관개조직, 지방자치단체, 물관리 기관, 상수도 사업자 등 기존 물이용자의 의견 반영 구조에 주목하였다.
넷째, 보상과 비용분담은 물 재배분 과정에서 발생하는 농업용수 감량 부담, 관개시설 현대화 비용, 대체수원 확보 비용, 지역경제 영향에 대해 누가 어떤 기준으로 부담하고 보상하는지를 검토하는 항목이다. 다섯째, 환경 및 제3자 영향은 물 재배분이 하천 생태계, 지하수계, 하류 이용자, 소규모 농업인,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고 관리하는지를 분석하는 기준이다. 여섯째, 재난대응 연계성은 가뭄 예·경보와 수문정보가 실제 물배분 조정, 비상공급, 한시적 물이전, 수요관리 조치와 얼마나 체계적으로 연결되는지를 검토하는 항목이다.
이러한 분석틀은 물갈등을 단순한 수량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한정된 수자원을 둘러싼 권리 조정, 비용 부담, 참여 구조, 환경영향, 재난 대응체계가 결합한 제도적 조정 문제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국외 및 일본 사례의 정책적 함의를 비교하고, 한국의 통합물관리 체계에서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이 어떠한 조건과 절차 속에서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도출하고자 한다.
3. 국제 물 재배분 논의와 해외 사례의 시사점
3.1 물 부족에 대한 농업 책임론의 재검토
도시 물 수요 증가로 인해 농업 부문의 물이용은 물 부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으나 Molle and Berkoff(2009)는 이러한 논의가 농업이 수자원을 독점하고, 농업용수가 구조적으로 낭비되며, 도시·산업용수의 가치가 항상 더 높다는 단순화된 통념에 기반한다고 비판하였다. 농업용수는 필지 단위에서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회귀수를 통해 하류 하천과 지하수계로 재유입되어 유역 물순환에 기여한다. 또한 도시 물 부족은 강수 부족뿐 아니라 노후 관망, 누수, 요금체계, 인프라 투자 부족 등 제도적 요인과도 관련된다(Molle and Berkoff, 2009). 이러한 논의는 농업용수 재배분을 단순한 절감 가능 수량의 확보 문제가 아니라, 유역 물순환, 관개 관행, 도시 수자원 인프라, 사회적 수용성과 연결된 복합적 조정 문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3.2 전 세계 농촌·도시 물 재배분 동향
농촌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의 물 재배분은 기후변화,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물 수요 증가와 함께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Garrick et al.(2019)은 전 세계 농촌·도시 물 재배분 사례 103건을 분석하였으며, 이들 사례는 연간 약 160억 m3의 물을 총 약 13,000 km에 걸쳐 도시지역으로 이동시키고, 2015년 기준 약 3억 8,300만 명의 도시 인구에 대한 생활·공업용수 공급과 연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과거 북미 중심이던 재배분 사례는 2000년 이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물 재배분이 단순한 시장 거래나 수리권 매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사례에서는 행정적 결정과 이해관계자 간 집단적 협상이 주요 조정 수단으로 작동하였다. 이는 물이 경제재인 동시에 공공재이며, 지역 공동체의 생존 기반이라는 성격을 함께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물 재배분은 신규 수자원 개발의 대안으로 논의되지만, 실제로는 취수장, 도수관로, 저수지 등 물리적 인프라 구축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재배분 이후 용수공급지역의 농촌경제 위축, 고용 감소, 공동체 변화, 보상 효과 등에 대한 실증 분석은 여전히 부족하다(Garrick et al., 2019). 이러한 국제 동향은 물 재배분이 단순한 시장 거래나 수리권 이전이 아니라, 행정적 조정, 인프라 구축 협상, 지역사회 영향이 결합된 복합적 정책 과정임을 보여준다. 한편 호주 머레이-달링 유역은 취수 총량 상한(cap) 설정과 수리권의 분리·등록 제도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물 거래 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허가·면허 기반 수리권 체계가 정비된 조건에서 시장형 재배분이 작동함을 보여준다(DCCEEW, 2025).
3.3 캘리포니아: 가뭄기 단기 물이전과 엄격한 무해 원칙
미국 캘리포니아의 물이전 제도는 시장 기반 물관리 사례로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공공 규제와 행정적 검증 절차 위에서 작동하는 관리형 제도에 가깝다. 이러한 제도는 신규 수자원 개발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1982년 관련 법 개정으로 첫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1987~1992년의 극심한 장기 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본격화되었다(SWRCB, 2026). 특히 1991년 설립된 긴급가뭄물은행(Emergency Drought Water Bank)은 장기 공급원이 아니라, 농업용수를 일시적으로 도시 용수 등으로 전환하여 위기 상황의 물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였다. 이처럼 캘리포니아의 물이전은 주로 1년 이하의 단기 이전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평상시 상시 공급체계라기보다 가뭄기 수급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 대응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이전 가능한 물이 반드시 ‘new water’여야 한다는 점이다. 즉, 휴경, 지하수 대체 양수, 저수지 재운영 등 추가적인 관리 조치를 통해 새롭게 확보된 수량만 이전 대상이 되며, 기존 이용자나 하천환경이 활용할 수 있었던 물을 단순히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모든 물이전은 무해 원칙의 적용을 받아 다른 합법적 수리권자, 어류·야생동물 서식처, 하천 내 환경적 편익에 불합리한 피해를 초래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 수문학적 영향, 제3자 피해, 환경영향에 대한 행정적 검토가 이루어진다(CDWR and SWRCB, 2015). 특히 휴경을 통한 이전은 지역경제 영향을 고려해 관개면적 제한이 적용되고, 지하수 대체양수는 하천유량 감소분 공제와 지하수위·수질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캘리포니아 사례는 물 재배분이 단순한 수리권 거래가 아니라 과학적 검증, 제3자 보호, 환경영향 관리가 결합된 공공재 관리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3.4 스페인 발렌시아: 부분적 성공 이면의 거버넌스 취약성
스페인 발렌시아의 Marina Baixa 유역은 농촌·도시 간 물 재배분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 지역은 1970년대 후반 가뭄과 해안 관광산업 성장으로 도시용수 부족이 심화되자, 지방정부와 지자체가 CAMB(Consorcio de Aguas de la Marina Baixa)를 구성하여 광역 물관리 체계를 마련하였다(Sanchis-Ibor et al., 2019). CAMB는 내륙 농업지역의 지하수와 지표수를 도시용수로 공급하는 대신, 해안 도시의 처리수를 농업용 재이용수로 제공하고 관개시설 유지관리비와 전력비를 지원하는 보상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신규 댐 건설 없이 물을 순환적으로 활용하고, 도시지역은 안정적인 용수를 확보하며 농업 부문은 대체수원과 재정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공 이면에는 구조적 거버넌스 문제가 존재하였다. CAMB는 협상 효율성과 거래비용 절감을 이유로 일부 대규모 관개 조합과만 계약을 체결하였고, 동일 대수층을 공유하는 다수의 소규모 관개 조합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그 결과 계약에 참여하지 못한 영세 농가들은 지하수위 저하에 따른 양수 비용 증가와 염분 피해를 부담하였다. 또한 농업용 재이용수의 염분 문제는 장기적으로 토양 염류화와 생산성 저하를 초래할 수 있었으나, 폐쇄적 계약 구조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수질 개선과 환경영향 관리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Marina Baixa 사례는 보상과 재이용수 공급을 결합한 물 교환 기반 재배분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폐쇄적 협상 구조가 소규모 이용자 배제와 제3자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5 남아프리카공화국: 형평성 중심 물개혁의 이상과 현실적 한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물관리 체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1998년 국가물법을 제정하고 물 재배분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 제도의 핵심은 모든 수자원을 국가가 공공신탁의 형태로 관리하고, 물을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 이익에 따라 배분·조정해야 할 자원으로 본다는 점이다. 특히 남아공은 인간의 기본적 생활 수요와 하천 생태계 보호를 위한 보전 수량(Reserve)을 우선 확보한 뒤, 남은 수자원을 허가제를 통해 배분하는 구조를 채택하였다. 이는 과거 백인 상업농 중심으로 집중되었던 수리권 구조를 재편하고,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집단의 물 접근권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이상은 실제 집행 과정에서 여러 한계에 직면하였다. 기존 합법적 물이용을 검증하고 정량화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장기간 소요되면서 재배분이 지연되었으며, 물 사용권이 배정되더라도 토지, 관개시설, 자본, 영농기술이 부족하면 실제 생산과 생계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Farolfi and Perret, 2002; Msibi and Dlamini, 2011). 또한 광업·산업 부문과 소규모 농가 간 경쟁 속에서 토지, 관개시설, 자본, 기술 및 행정 접근성의 차이가 지속되면서 형평성 중심 개혁의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났다. 남아공 사례는 형평성 중심의 법제 개혁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 경우, 행정 역량, 데이터 검증, 토지·인프라 지원 부족으로 실제 재배분 효과가 제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일본 물관리 정책의 특징과 비교사례
일본의 물관리 정책은 제한된 국토, 높은 인구밀도, 계절적 강수 편중, 도시화·산업화 등 한국과 유사한 조건 속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은 대도시권 용수 수요 증가와 농업용수 이용 간 갈등을 경험했으나, 신규 수자원 개발이나 강제적 수리권 조정보다는 기존 수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이해관계자 간 협력을 통해 문제를 조정해 왔다. 특히 농업용수를 단순한 생산 요소가 아니라 농촌 경관, 지하수 함양, 생태계 보전 등 다원적 기능을 지닌 공공적 자원으로 인식한다. 이에 따라 관개시설 현대화, 물 절약, 재이용, 지하수 함양 등을 결합하여 도시와 농촌이 여유 수량을 공유하는 방식이 발전하였다. 본 절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도네강 유역과 구마모토 지역 사례를 검토한다.
4.1 도네강 유역 사례: 농업수리 현대화를 통한 물 재배분의 제도화
일본 도네강 유역, 특히 수도권과 인접한 사이타마현 지역은 1970~198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생활·공업용수 수요가 매우 증가하였다. 그러나 신규 댐 건설은 재정 부담, 사회적 갈등, 환경영향 문제로 신속한 대응에 한계가 있었고, 농업 부문에서도 노후 관개시설, 토공 수로의 누수, 농촌 고령화에 따른 유지관리 부담이 누적되고 있었다. Matsuno et al.(2007)은 이러한 도시와 농촌의 문제를 동시에 완화하기 위해 추진된 농업용수 재편조치(AWRM, Agricultural Water Reorganization Measures)를 협력형 물 재배분 사례로 평가하였다.
AWRM의 핵심은 농업용수를 일방적으로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도시 수도사업자가 농업 수리시설 현대화에 투자하고, 그 결과 절감된 수량을 도시 용수로 전환하는 데 있다. 일본은 기존 흙수로를 콘크리트 수로 또는 관수로로 개량하고, 취수·분수 시설을 통합·자동화하여 누수와 운영 손실을 줄였다. 이를 통해 관개 안정성이 높아졌고, 수문 조작, 수로 준설, 제초 등 농업인의 유지관리 부담도 완화되었다.
농업 부문은 노후 시설 개보수 비용을 지원받고 영농환경을 개선할 수 있었으며, 도시 부문은 신규 수자원 개발보다 낮은 비용과 짧은 기간에 안정적인 용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수리권 조정은 단순한 시장 거래가 아니라 하천법 체계하의 행정 절차와 관계기관, 이해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도네강 사례는 물 재배분이 일방적 희생이 아니라 인프라 투자, 비용분담, 행정적 조정을 결합한 상생형 구조로 설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2 구마모토 사례: 농업의 다기능성과 자연기반해법의 연계
일본 구마모토시 사례는 농업용수와 도시 용수의 관계를 경쟁 구조가 아니라 유역 차원의 순환체계와 상호의존 구조로 접근한 대표적인 자연 기반 해법 사례이다. Taniguchi et al.(2019)에 따르면 구마모토시는 생활용수 전량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지하수 공급의 배경에는 상류 화산회토 지대의 논 농업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상류 지역의 논은 벼 재배 과정에서 장기간 담수 상태를 유지하며 물을 지하로 침투시켜 대수층을 재충전한다. 즉, 논은 단순한 농업생산 공간이 아니라 도시 수자원을 유지하는 자연 기반 인프라로 기능해 온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쌀 소비 감소, 도시화에 따른 농지 전용, 밭작물 전환 확대 등으로 논 면적이 감소하면서 지하수위 하강과 취수 비용 증가가 주요 물관리 문제로 부상하였다. 이에 구마모토시와 지역 기업들은 신규 댐이나 대규모 인공함양시설 대신 상류 농업지역과 협력하는 환경서비스 지불 제도를 도입하였다. 도시와 기업이 공동 기금을 조성하고, 농민이 비농번기 등에 논 담수를 실시하면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약 456호의 농가가 참여하였고, 약 460만 m2의 농지에서 담수 관리가 이루어졌으며, 매년 약 4,860만 엔의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그 결과 도시 전체 수요의 약 13%에 해당하는 지하수 함양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구마모토 사례는 농업이 단순한 물 소비 부문이 아니라 지하수 함양, 홍수 완화, 생태계 유지 등 유역 물순환과 도시 물안보를 지탱하는 다기능적 기반임을 보여준다.
4.3 분석틀에 따른 국외·일본 사례의 종합 비교
이상에서 검토한 다섯 사례를 여섯 가지 분석틀에 따라 비교하면 Table 1과 같다. 캘리포니아는 ‘new water’ 원칙과 무해 원칙을 통해 배분 기준, 권리·절차, 환경·제3자 영향, 재난 대응 연계성 측면에서 비교적 정교한 제도를 갖추었으나, 이전 가능 수량 산정과 제3자 피해 검토에 높은 행정적 검증 비용이 수반된다. 발렌시아 Marina Baixa 사례는 재이용수 공급과 시설비 지원을 결합하여 보상·비용분담 측면에서 진전된 모델을 보여주지만, 폐쇄적 계약 구조로 소규모 이용자 배제와 제3자 피해가 발생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공공 신탁 원칙에 기반한 형평성 중심의 권리 재구성을 시도했으나 행정 역량과 인프라 연계 부족으로 실행에 한계를 보였다. 일본의 도네강 사례는 시설 현대화 투자와 도시 부문의 비용분담을 절감 수량의 수리권 조정·신규 허가 절차와 결합함으로써 권리·절차 및 보상·비용분담 측면에서, 구마모토 사례는 논의 지하수 함양 기능에 대한 환경서비스 지불을 통해 보상 및 환경·제3자 영향 측면에서 각각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만 캘리포니아를 제외한 대부분 사례는 가뭄 단계별 배분 조정이나 비상 대응체계와의 직접적 연계가 제한적이다. 종합하면, 물 재배분의 지속가능성은 단일 제도의 도입 여부보다 과학적 검증, 제3자 보호, 보상과 비용분담, 시설 현대화, 지역 협력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로 좌우된다.
Table 1.
Comparative Analysis of Overseas and Japanese Cases across Six Analytical Dimensions
5. 한국의 제도 조건과 갈등 구조
5.1 물관리기본법과 국가계획의 제도적 진전과 한계
한국의 물관리 체계는 2018년 「물관리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부처별·기능별 분산 관리에서 유역 중심의 통합물관리로 전환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제11조(유역별 관리)는 유역 단위 관리, 제14조(물의 배분)는 합리적·공평한 물배분과 생태적 수요 고려, 제32조(물분쟁의 조정)는 물분쟁 조정의 근거를 제시한다(Korean Law Information Center, 2026b). 또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은 수요관리, 대체 수자원 확대, 수생태계 복원, 기후변화 대응, 거버넌스 강화를 주요 방향으로 제시하였다(Presidential Water Commission, 2021). 그러나 갈수기나 극한 가뭄 시 생활·공업·농업·환경 용수 간 우선순위를 조정할 구체적 운영 규칙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는 통합물관리의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음에도, 실제 배분 조정 단계에서는 제도적 공백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통합물관리 체계 도입 이후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은 국가계획과 정책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됐으나, 실제 이행 단계에서는 제도, 운영, 재정 측면의 구조적 제약이 지속되고 있다. Kim et al.(2020)은 농업용수가 국가 물관리 정책에서 여전히 부차적 관리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농업용수 절감 및 전환이 정책 목표로 제시되었음에도 그 성과를 계측·검증하고 공공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농업용수 효율화 사업이 주로 시설 개선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절감된 수량이 실제로 하천유지용수, 생활·공업용수 또는 환경용수 등 다른 공익적 용도로 전환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사후 검증과 환류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이 한계로 제기되었다.
Lee et al.(2021) 역시 물관리일원화 이후 국가물관리위원회, 유역물관리위원회,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및 유역물관리종합계획 등 통합물관리의 제도적 틀은 마련되었으나, 하천관리와 농업용수 관리는 여전히 별도의 법·제도 체계 속에서 병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농업용수는 「농어촌정비법」과 농업생산기반시설 관리체계에 근거하여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반면, 하천 및 유역 물관리 체계는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중심의 계획·조정 체계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물배분 조정과 가뭄 대응 협의 과정에서 권한과 책임의 소재가 불명확하며, 이러한 구조적 분리로 인해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이 정책 목표의 선언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은 통합물관리 체계가 형식적으로 구축되었음에도, 농업용수 관리와 하천·유역 물관리 체계 사이의 제도적 분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도적 분리는 갈수기나 극한 가뭄 상황에서 농업용수의 감량, 전환, 보상 및 비용분담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기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5.2 농업용수의 비중과 수리권 구조의 불명확성
농업용수는 국내 전체 용수 이용량의 약 41%를 차지하는 주요 수요 부문으로, 가뭄이나 갈수기에는 생활·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감축 대상으로 자주 논의되어 왔다(Kim et al., 2021). 그러나 농업용수는 단순한 소비성 용수로 보기 어렵다. 논에 공급된 물은 지하수 함양과 하천 회귀수를 통해 유역 물순환에 기여하며, 농업은 식량 생산뿐 아니라 농촌 유지와 생태계 보전 기능도 수행한다. 농업용수를 단순한 절감 가능 수량으로만 인식하면 그 공익적 기능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한편 제도적으로는 관행수리권과 허가수리권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갈수기 감량이나 재배분 시 권리 조정 기준이 불분명하다(Cho et al., 2020a; Lee et al., 2007). 따라서 농업용수 재배분 논의에서는 농업용수의 물순환 기능과 수리권 구조의 불명확성이 핵심 제도 쟁점으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현행 「농어촌정비법」상 농업용수는 개별 수요자와의 거래 단위가 아니라, 토지와 결합된 농업생산기반시설 및 관개구역 단위로 관리된다(제2조 제6호, 제17조; Korean Law Information Center, 2026a). 따라서 산업용수나 상수도와 같은 개별적 수요·공급 체계와는 근본적인 구조적 차이가 있으며, 농업용수의 감량이나 재배분 역시 단순한 총량 배분 또는 비용 부담의 문제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동일한 수원공을 이용하더라도 간선·지선수로의 구조, 필지 위치, 관개시설의 노후도, 말단부 도달 수량, 경지 접근성에 따라 실제 공급 안정성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농업용수 수리권 정비는 물값이나 시설 유지관리비 부담의 문제로 환원되기보다, 농업용수 공급계통의 물리적 제약과 수요자 측면의 수리안전도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또한 농업용수의 배분 기준을 설정할 때는 선행연구가 제시한 공급능력, 필요 수량, 한발 빈도, 물 부족 가능성 검토를 기초로 하되, 이를 실제 영농 현장의 공급 충족도와 말단부 도달 가능성을 포함하는 수요자 중심 수리안전도 관점으로 확장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서 ‘수요자 중심 수리안전도’란 저수지 공급능력이나 한발 빈도와 같은 공급시설 기준을 넘어, 필요수량 대비 공급 충족도, 공급 시기의 적절성, 말단부 용수 도달 가능성, 반복적 물 부족 위험 등 실제 영농 현장에서 체감되는 용수 공급의 안정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기존 농업용수 공급계획은 주로 단위 면적당 필요 수량, 저수지 공급능력, 한발 빈도 등 공급시설의 계획·운영 기준을 중심으로 평가되어 왔다(Nam et al., 2018). 그러나 실제 가뭄 피해와 물배분 갈등은 동일한 저수율이나 공급량 조건에서도 작물 생육단계, 필지 위치, 관개시설 상태, 공급 시기와 지속 기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유역 단위의 물배분 조정에서는 단순한 공급 가능량 판단을 넘어, 필요수량 대비 공급 충족도, 공급 시기의 적절성, 말단부 용수 도달 가능성, 반복적 물 부족 위험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Nam et al., 2018; Ahn et al., 2009). 이러한 정보는 농업용수 감량이나 타 용도 연계 활용을 논의하기 위한 기초자료이므로, 농업인, 한국농어촌공사, 지방자치단체, 상수도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유역 또는 중소유역 단위 거버넌스에서 투명하게 공유될 필요가 있다(Cho et al., 2020b).
5.3 가뭄 대응체계와 물 재배분 실행 간의 연계 한계
한국의 가뭄 대응체계는 정보 생산과 모니터링 측면에서 상당한 역량을 축적해 왔다. 국가가뭄정보분석센터와 국가가뭄정보포털은 생활·공업용수, 농업가뭄, 기상 가뭄 등에 대한 예·경보와 전망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가뭄 위험을 조기에 인지하는 기반으로 기능한다(K-water, 2023). 그러나 가뭄 예·경보 정보가 실제 부문별 물배분 조정, 한시적 감량 기준, 피해보상 및 비용분담 절차로 연결되는 운영체계는 아직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국내 가뭄 대응 사례는 이러한 한계를 보여준다. 2015년 보령댐 가뭄은 제한급수와 긴급 도수로 중심의 비상공급 대응 사례로, 농업용수 재배분 사례라기보다 위기 시 대체수원 확보와 기관 간 협의의 필요성을 보여준다(K-water, 2015). 2022~2023년 영산강·섬진강 유역 가뭄에서는 절수, 수압 조정, 하천수 비상공급, 자율절수 수요조정 협약, 농업용수 대체 공급, 하천유지용수 감량, 댐 간 연계 운영 등이 함께 추진되었다(MOE, 2023b, 2023c, 2023d). 이는 농업용수를 일방적으로 타 용도로 전환한 사례라기보다, 농업용수 공급을 유지하면서 댐 저수량을 비축하고 생활·공업용수 공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유역 내 수원과 용도 간 조정을 시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2025년 강릉 오봉저수지 가뭄은 농업용 저수지가 생활용수 공급과 연계될 경우, 극한 가뭄 시 비상공급, 제한급수, 농업용수 공급제한, 대체수원 확보가 동시에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MOIS, 2025). 종합하면 한국은 정보 생산, 위험 인지, 시설 연계, 비상공급 측면에서는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으나, 부문 간 용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물배분 조정 원칙, 비상공급 발동·종료 기준, 한시적 전환 범위, 비용분담과 피해보상 기준, 현장 이해관계자의 사전 협의 절차를 평상시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5.4 생태·환경용수의 적응적 배분과 유역 조건 기반 운영
최근 통합물관리 정책에서는 하천 생태계 보전과 환경유량 확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하천 생태계 훼손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환경유량은 지속가능한 물관리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유역의 수문 조건과 가뭄 위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경직적 운영은 생활·공업·농업용수와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체 물관리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영산강·섬진강 유역 가뭄 대응과 섬진강댐 농업용수 대체공급 사례 역시 환경유량, 농업용수, 생활·공업용수 간 배분이 고정된 위계가 아니라 유역의 수문 조건과 가뭄 단계에 따라 조정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Kim et al.(2024)은 가뭄 취약성이 높은 섬진강 유역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시나리오별 물배분 우선순위를 비교하였다. 분석 결과, 건조 조건이 심화될수록 생활·공업용수의 안정적 공급을 우선 확보하는 전략이 유역 전체의 물안보 유지에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뭄 시 평림댐과 인근 농업용 저수지(수양제)의 연계 운영이 용수 공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인 연구도 있다(Park et al., 2024).
반면 환경유량을 조건과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우선 배분하는 경우, 일부 지역에서 생활·공업용수 부족이 확대되고 공급 안정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Kim et al., 2024). 다만 이는 특정 유역과 시나리오에 기반한 결과이므로, 모든 유역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일반 원칙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결과는 환경유량 확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극한 가뭄 상황에서 고정적 배분 위계만으로는 부문 간 물갈등을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환경용수 문제는 생태적 필요성과 생활·공업·농업용수의 안정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적응적 배분 쟁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6. 종합고찰 및 제도적 함의: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 체계의 설계 방향
6.1 한국 물관리 체계의 핵심 제도 공백
한국의 통합물관리 체계는 유역 단위 관리와 공평한 물배분 원칙을 제도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 갈수기나 극한 가뭄 상황에서 생활·공업·농업·환경용수 간 배분 우선순위와 감축 절차를 구체적으로 작동시키는 운영 규칙은 아직 충분히 정착되지 못하였다. 특히 농업용수는 관행수리권과 허가수리권이 혼재되어 있어 감량 또는 전환이 필요한 경우 적용할 권리 기준과 행정 절차가 불명확하다. 또한 용수 감축이나 전환으로 발생할 수 있는 농업 피해, 지역경제 손실, 환경·제3자 영향에 대한 보상 및 비용분담 원칙도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재난대응 측면에서도 가뭄 예·경보와 모니터링 인프라는 발전했지만, 해당 정보가 실제 부문별 감축 기준이나 유역 단위 비상배분 실행으로 연결되는 운영체계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한국의 물갈등은 물리적 수량 부족보다 앞의 여섯 가지 조정 요소가 실제 운영 규칙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제도적 조정 역량의 문제로 이해된다.
6.2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의 기본 방향: 일방적 감축에서 상호편익형 조정으로
해외 사례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할 때에는 수리권 확보 경로와 제도적 기반의 차이를 전제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와 호주 등은 선점적 수리권, 허가·면허 기반 수리권 또는 거래 가능한 물이용권 체계를 바탕으로 일정한 조건에서 물이전·임대·거래 제도를 운영해 왔다(CDWR and SWRCB, 2015; DCCEEW, 2025). 반면 한국의 농업용수는 관행수리권과 하천법상 허가 체계가 병존하고, 저수지·양수장·관개수로 등 농업생산기반시설이 국가와 한국농어촌공사 중심의 공공관리 체계 속에서 개발·운영되어 왔다(Cho et al., 2020a; Lee et al., 2021). 따라서 한국에서는 개별 수리권 거래 중심의 시장형 모델을 직접 적용하기보다, 공공관리와 이해관계자 협의에 기반한 조정체계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체계가 농업용수를 도시·산업용수의 대체수원으로 단순 전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관리형 상호편익 조정 모델로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농업용수는 식량 생산뿐 아니라 유역 물순환과 농촌사회 유지에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을 지니므로, 다목적 활용은 농업수리시설 현대화, 도시·산업 부문의 비용분담, 환경서비스 보상, 수리권 조정, 이해관계자 협의가 결합된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형 인센티브는 수리권 매매 이익이 아니라 절감·전환으로 발생한 공익적 편익을 농업 부문에 환류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농업수리시설 현대화 사업 연계, 절감 실적 기반 공익 보상, 물 절약형 영농 또는 작부체계 전환 지원, 가뭄 대응 협약 참여 농가에 대한 보조금 연계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농업용수 절감을 일방적 감량 의무가 아니라, 공공관리 체계 안에서 농업 부문이 편익을 공유하는 협력적 조정 수단으로 전환하는 의미를 갖는다.
6.3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 제도의 구성
6.3.1 유역 맞춤형 배분 기준과 가뭄 비상배분계획
첫째, 유역 맞춤형 배분 기준과 가뭄 비상배분계획은 기존 댐·보 등의 연계운영협의회 운영체계와 연계하여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현행 연계 운영체계는 수계 단위의 시설 운영과 수문 분석을 담당하는 상위 조정 구조로 기능할 수 있으나, 농업용저수지의 비상 활용과 같이 특정 지역의 권리 제한과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은 현장 이해관계자의 수용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극한 가뭄 시 생활용수 최소 공급 보장, 농업용수 감량의 한시성, 영농 피해 최소화, 비상공급 발동 조건, 공급 종료 기준, 비용분담 및 피해보상 원칙을 사전에 협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행 연계 운영체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조정과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보완적 운영원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6.3.2 수리권 조정과 피해보상 절차의 명확화
둘째, 농업용수 감량이나 전환이 필요한 경우 적용할 수리권 조정 절차의 정비와 피해보상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농업용수는 관행적 이용과 하천법상 허가수리권 체계가 병존하고, 기존 관행수리권의 보호 범위와 조정 절차가 명확히 정리되어 있지 않다(Cho et al., 2020a; Lee et al., 2007). 극한 가뭄 시에는 유역 내 가용 수량에 비례하여 취수량을 한시적으로 조정하는 원칙을 검토할 수 있으나, 이는 반드시 피해 산정, 보상 기준, 비용분담 원칙과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농업부문의 감량이 생활·공업용수 또는 환경용수 확보에 기여하는 경우, 그 편익을 받는 부문이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물 재배분의 절차적 정당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
6.3.3 중소유역 협의체와 현장 기반 거버넌스
셋째, 유역물관리위원회와 별도로 중소유역·저수지 단위의 현장 기반 협의체의 시범 운영 및 제도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유역물관리위원회는 통합물관리의 공식 거버넌스 구조를 제공하지만, 실제 용수 이용 갈등은 동일 하천, 저수지, 용배수로, 지하수 대수층을 공유하는 지역 단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물 재배분 논의가 지방자치단체, 한국농어촌공사, 대규모 수요자 등 일부 주체 중심으로 진행될 경우, 지자체 관리 수리시설, 소규모 농업인, 하류 이용자 등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 따라서 농업인 단체, 지자체, 한국농어촌공사, 산업계, 환경단체, 상수도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중소유역 협의체를 제도화하고, 동일 수원을 공유하거나 수량 조정의 영향을 직접 받는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정보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댐·보 등의 연계운영협의회와 중소유역 협의체는 상호 보완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전자가 수계 단위의 시설 연계와 비상 운영 방향을 조정하는 상위 협의 구조라면, 후자는 동일 하천·저수지·용배수로·대수층을 공유하는 현장 이해관계자의 수용성과 피해 조정 문제를 다루는 하위 협의 구조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다층적 협의 체계가 마련될 때 극한 가뭄 시 농업용수의 비상 활용도 일방적 전환이 아니라 사전 합의에 기반한 협력적 조정으로 작동할 수 있다.
6.3.4 보상·환경·데이터 기반 통합관리
넷째,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은 보상체계와 환경·제3자 영향 관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논, 농업용 저수지, 관개수로는 지하수 함양, 홍수 저감, 하천 유지, 생태계 보전 등 유역 물순환에 기여하므로, 이러한 공익적 기능을 평가하고 편익을 받는 도시·산업 부문이 비용을 분담하는 보상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절감량 기반 보상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단순 저수율이나 취수량 변화만으로 절감 효과를 판단하기보다, 기준수요량과 실제 공급량, 회귀수 및 하류 이용 가능량, 대체수원 활용에 따른 수문 영향, 영농 및 제3자 피해를 함께 고려하는 검증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 환경유량 역시 평상시에는 안정적으로 보장하되, 극한 가뭄 상황에서는 유역의 수문 조건, 생태 민감도, 피해 규모를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적응적 운영체계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저수율, 강수 전망, 공급 가능량과 같은 수문정보뿐 아니라 관개구역별 필요수량, 말단부 공급 여건, 대체수원 확보 가능성, 감량 시 예상되는 영농 영향을 관계기관과 이해관계자가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보는 농업인이 물배분 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감량 부담과 보상 기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초자료가 된다. 따라서 중소유역 협의체는 단순한 의견수렴 기구가 아니라 농업용수 수급 여건, 예상 피해, 보상 기준을 함께 검토하는 정보 기반 거버넌스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Cho et al., 2020b). 또한 도시 확장, 산업단지 입지, 농지 전용 등 토지이용 변화가 물 수요와 유역 물순환에 미치는 영향을 지자체 물관리 계획에 반영함으로써, 물 재배분 갈등을 사후 조정이 아니라 사전 예방 중심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체계의 제도적 함의는 배분 기준, 권리·절차, 거버넌스, 보상·비용분담, 환경·제3자 영향, 재난대응 연계성이라는 여섯 가지 분석틀과 연결된다. 각각의 제도적 공백과 이에 대응하는 정책 구성 및 이행 단계는 Table 2와 같다.
Table 2.
Policy Implications and Implementation Packages for Agricultural Water Multi-purpose Utilization in Korea
6.4 단계별 이행 방향
이상의 제도적 함의를 실제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단계별 이행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법률 개정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과제를 우선 추진할 수 있다. 유역별 가뭄 대응 운영 규칙 정비는 「물관리기본법」 제14조(물의 배분)와 유역물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 기능을 활용하여 유역물관리종합계획 또는 그 시행계획 차원에서 반영할 수 있으며, 중소유역 협의체 시범 운영과 데이터 공유체계 구축은 관계기관 간 업무협약(MOU)과 기존 가뭄 대책 협의체 운영 경험을 토대로 행정적 조치만으로 착수가 가능하다. 장기적으로는 환경서비스 지불 제도, 토지이용계획과 지자체 물 관련 계획의 연계, 유역 단위 통합 재원 체계를 구축하여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이 일회성 가뭄 대응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유역관리 체계로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7. 결 론
본 연구는 국제 물 재배분 사례, 일본의 도네강·구마모토 사례, 한국의 통합물관리 제도와 가뭄 대응 사례를 비교하여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의 제도적 조건을 검토하였다.
분석 결과,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은 배분 기준, 권리와 절차, 거버넌스, 보상과 비용분담, 환경 및 제3자 영향, 재난대응 연계성이 결합된 제도적 조정 과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해외 사례는 물 재배분의 지속가능성이 특정 제도의 도입 여부보다 과학적 검증, 제3자 보호, 보상과 비용분담, 시설 현대화, 지역 협력의 결합 방식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형 농업용수 다목적 활용체계는 현행 댐·보 등의 연계운영협의회 운영체계를 전제로 하되, 유역별 가뭄 비상배분 운영원칙, 한시적 수리권 조정 절차, 피해보상 및 비용분담 기준, 중소유역 협의체, 환경서비스 평가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단계적으로 결합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농업용수 감량이나 타 용도 연계 활용은 단순한 총량 기준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동일한 감량률이나 저수율 조건에서도 저수지, 양수장, 간선·지선수로, 말단 필지의 위치와 시설 상태에 따라 실제 영농 영향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역 단위의 물배분 조정에서는 공급 가능량뿐 아니라 필요수량 대비 공급 충족도, 공급 시기, 말단부 용수 도달 가능성, 반복적 물 부족 위험 등을 포함하는 수요자 중심 수리안전도 정보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농업용수의 다목적 활용을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 제도적 조정체계로 구체화하기 위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한편 본 연구는 문헌 및 제도 비교에 기반한 정책 고찰 연구이므로, 실제 유역 단위의 수문자료 분석과 이해관계자 인식조사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향후 연구에서는 특정 유역을 대상으로 농업용수 절감 가능량, 전환 가능량, 피해보상 규모, 환경·제3자 영향, 농업인의 수용성을 정량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